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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짐승들/멍쭈

몽숙이 실종사건


다른날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병원에 가야해서 청량리에 갔다가 오리알이 싸서 10개샀다.

몽숙이 아가도 가진듯 싶은데 특별히 몸보신 시켜준게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좀 챙겨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점심에 어머니를 만나 외식을 하고 대화하다보니, 미용실에 같이 가자고 하셔서

하고싶었던 단발 베이비펌을 했다.

(참고로 내 머리는 단발생머리와 단발베이비펌의 무한반복;;)


집에 가려고 시계를 보니 9시 가까이 되어있었다. 미용실이 있는 어머니집과 내가 살고있는 집은 버스로 3-40분정도의 거리기에 버스를 타고 편안히 집에 왔다.


대문을 열었다.

평소같으면 나와있어야 할 봉숙이와 몽숙이

그런데 봉숙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봉숙이는 얌생이라 춥거나 눈이오거나 비가오거나 지가 귀찮으면 안나오고 숨어서 고개만 빼꼼하고 있거나, 재밌는게 있으면 뒤란에서 노느라 안기어나온다.

하지만 몽숙이는 다르다. 천상 개 라고 해야할까.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리 재밌는 것이 있어도, 아무리 맛있는 것이 있어도 주인 혹은 손님이라도 오면 제일 먼저 뛰어와서 반기는 녀석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구석 구석 안보이는 곳까지 불러보아도 녀석이 없다. 이럴리가 없다.


현관을 열고 마루에서 컴퓨터를 하고있던 사촌동생에게 물었다.


"몽숙이 어디갔어?"


개가 없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그대로 뛰어 나갔다.

가끔 문열리면 도망을 즐기던 녀석이었기에, 그렇지만 부르면 또 곧장 달려오는 녀석이었기에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는다.


앞집 정마트 아주머니가 7시쯤 대문 앞에 있는걸 봤다고 하신다.

나랑 산책가려고 나와있는줄 알고 그냥 두셨단다.


내가 집에 도착한건 아홉시 반 이후였다.


고모가 책 정리 하며 버리시려고 앞빌라 수위아저씨를 부르셨는데 그 아저씨가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나간거 같단다. 그것도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


한시간 넘게 온 가족이 돌아다니며 불렀지만 없었다.


너무 늦었기에 집에 들어와 전단지를 만들고 인터넷 유기동물 사이트들과, 동호회들에 분실글을 올렸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음날, 눈을 떠 현관문으로 나갔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마다 현관유리사이로 쳐다보고 인사하는 몽숙이다.

덜컥 실감이 났다. 없구나 없어졌구나. 우리 몽숙이가 없구나..


봉숙이를 데리고 전단지를 붙이러 나갔다.

외대 후문쪽과 주택가 골목들에 전단지를 붙이는데, 어떤 아저씨가 못붙이게 한다.

정상회의 때문에 특별 단속기간이라고, 2-3일만 참으란다.


네. 라고 대답했지만 참을 수 있을리가 없다.

우체부 아저씨와 택배아저씨, 그리고 근처 가게들에도 전단지를 나누어주었다.


어젯밤새 한통의 연락도 오지 않았다. 아이의 목에는 연락처가 적혀있는 목걸이가 있다.




다음날은 경희대 쪽에 붙이고 다녔다.

아는 사람들이, 혹은 모르는 사람들도 간혹 힘내라며 찾을 수 있다며 격려하는 문자를 주었다. 정신이 나질 않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남자친구는 계속 트위터로 몽숙이 찾는 글을 올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셋째 날에는 병원에 가야했다.

청량리에 병원이 있기에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전단지를 붙였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경희대 게시판에는 자유로이 붙일 수 있다는 답변을 얻어주어서 경희대에도 붙였다. 장장 5시간을 걸으며 붙였다. 힘이 들고 안들고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왜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신걸까

정말 몽숙이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정말 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걸까.

찾길 기도하면서도 사실은 믿지 않았다.

전단지를 붙이면서도 내가 정말 이런걸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만, 멈출수가 없었다. 그거라도 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밥도 넘어가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았다. 몽숙이 이녀석은 꿈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자신은 자식이 죽었을 때도 밥을 먹었다며 강권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그날저녁 연락이왔다.

몽숙이가 집을 나가던 밤에 몽숙이를 목격했다는 이야기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걸, 차에 치일뻔 해서 아이를 잡아서 골목으로 넣어주었다는 이야기였다.


달려나갔지만,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못봤단다.

하는 수 없이 그 부근에 전단지만 잔뜩 붙이고 왔다


지혜를 주시기를 구했다.

전단지던, 트윗이던, 봐야할 사람이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넷째날이 되었다.

문득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침을 먹자마자 봉숙이와 전단을 붙이고 왔다.


어머니와 대화했다. 기도하면서도 믿지 않기 때문에 주시지 않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좀 편하게 먹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었다.


몸살이 좀 났다. 눈을 조금 붙였다. 한시간도 안되어 전화가 왔다. 느낌이 이상했다.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전화였다.

불과 아까 전에 전단지 붙인 곳 부근이었다. 리드줄을 챙기고 사촌동생과 함께 만나기로 한 장소로 나갔다. 


그사람은 전화로 이것 저것 물었다. 아이의 크기나, 아이를 어디서 키웠는지 등.

그리고 나서야 나와서 안내를 해주었다.


그 분의 집 창문에서 보이는 빌라와 단독주택 사이에 아무도 쓰지않는 공간에 몽숙이는 숨어있었다. 가만히 엎드려 쳐다 보고 있었다.


몽숙아.


불렀을 때서야 날 쳐다보고 꼬리치며 왔다


몽숙이였다. 정말로 몽숙이였다.

조금 살이 빠진듯 그러나 건강한 모습으로 거기에 있었다.


3일내내 그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낮에만 있는가 했더니, 전날엔 밤에도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말했다.

구조가 우리집 뒤란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사촌동생에게 가족들에게 전화하라고 하고, 난 남자친구에게 전화해 몽숙이를 찾았음을 알렸다.


온 가족이 다 나와있었다.

어머니도, 고모도, 할머니도 우셨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마음으로 염려하고 소망함은 같았다.




봉숙이도 기뻐했다.

할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10분에 한번씩 나가서 몽숙이를 훈계하셨다.





그 후 내가 되찾은것은 일상 이 아니었다.


일상에 대한 감사,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나를 나보다 더 잘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었다.


몽숙이를 잃어버리기 전 몇일간, 나는 광야생활에 지쳐있었다.

정체되어있어야 하는 내 청춘, 

어디로도 길을 막으시는 듯한 그 느낌

원망과 미움

그리고 일어설 기력 없음이었다.


젖은 심지가 탈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는 계속 되었지만 너무나 힘들었다.


물론 한가지로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난 활기를 되찾았고 감사를 되찾았다.

되돌아와준 몽숙이에게

같이 찾아준 남자친구와 가족들에게 그리고 얼굴을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을 되돌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지금 몽숙이는 조금 불안해하지만 괜찮다.

잘 놀고 잘 먹는다. 아직 태기가 확실치 않은걸로 봐서 임신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뭐 어떤가. 아이가 건강한데.


감사하다. 감사하다.

내 일상의 소소함에 감사하다. 그저 감사할 것 외엔 없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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